라섹후기- 암흑속에서도 생산적인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하여 (2일차~4일차)
수술하기 전에 순간적으로 쓸데없는 공상을 했었다. 만약 내가 최악의 상황을 맞이해 시력을 잃으면 무엇을 할지에 대해. 초반에는 유튜브를 통해 시각장애인으로의 삶을 알리고 인식 개선을 위해 살아갈 거다. 그리고 돈벌이가 좀 되면 부모님에게 그동안 받은 교육비의 일환으로 돈을 드린다. 이후 어느정도 성과를 이루면 불교에 귀의하거나, 닉부이치치처럼 희망을 주다가 요단강을 건나야겠다 라는 생각을 했다. 잠시지만 이런 상상을 하는 걸 보니 나는 뼛속까지 문과인가 싶다.
며칠차에 무엇을 했는지 일기처럼 길게 적지는 않겠다. 제목의 취지에 맞게 내가 어떤 생산적인 일을 했는지를 기록하는게 적합하다고 느낀다.
1. 3일차 까지는 친구들과 전화통화를 하루에 4~5시간은 한 것 같다. 목이 다 쉬었다. 몇 년 만에 처음으로 전화를 한 친구도 여럿 있었다. 지나고 생각하니 전화를 받아줘서 고마웠다.
2. 과제를 조금이나마 해야겠다는 일념으로 수기는 못하고 녹음으로 대신했다. 토론 과제가 있었는데 수술 전 미리 책은 읽어 뒀기 때문에 토론거리를 구상해서 녹음했다. 이후 과제 하는데 매우 도움이 됐다ㅎㅎ
3. 3일차 부터는 운동을 하기 시작했다. 병원에서는 일주일 뒤부터 헬스가 가능하다고 해서 스쿼트와 가벼운 웨이트만 하였다. 계속 누워있는 것 보다 훨씬 상쾌하다. 역시 인간은 움직여야 하나보다.
4. 평소에 잊고 있었던 영어 회화 인강도 들었다. 아직까지 글자가 희미하게 보여서 책은 못 읽고 따라만 했지만 좋았다. 문장 외우기 연습을 하니 몇시간이 훌쩍 간다.
5. 오랜만에 방 청소를 했다. 3일차 부터는 글씨 보는 것 이외에는 큰 문제가 없어서 몸을 많이 움직였다. 방 청소에 이어 집안 대청소까지 했다.
6. 몇 년 만에 통기타를 잡았다. 밴드 동아리활동 이후 거의 치지 않았는데, 역시 잘 안된다. 인생은 실전이긴 한가보다. 안 하면 까먹는다ㅋㅋ 그래도 이런 기회가 아니었으면 어느새 먼지 쌓인 기타 케이스를 열어볼 생각이나 했을까
라섹은 정말 특별한 경험을 준다. 20여년간 하루 종일 암흑 같은 좁은 공간에서 생활했던 적은 없었기 떄문이다. 그런데 막상 이런 저런 일을 하다 보니 시간이 정말 빨리 간다. 개인적으로는 여유로운 생활을 즐길 수 있어서 오히려 좋았다. 낮잠도 많게는 하루에 두번씩이나 잤다.
그리고 정말 오랜만에 잠들기 전 색다른 감정을 느꼈다. 마치 중학생때 ‘다음 날이 되면 키가 더 크겠지?’ 하는 설렘처럼 ‘다음날 더 잘 보이겠지?’ 하는 설렘이 있다. 중딩으로 돌아간 것 같다. 이 얼마만의 이불 속 설렘인가. 심지어 꿈에서 글자가 제대로 보이는 꿈도 꿨다.
마지막으로 꿀팁!
1) 항생제를 3시간마다 넣어야 하는데 시간을 계속 까먹는다. 투여하고 바로 세시간 뒤 알람을 맞추어 놓는게 좋다.
2) 수술 후 도수 없는 안경을 맞출 때 청광렌즈로 맞추기를 추천한다. 노트북이나 핸드폰의 블루라이트를 차단하여 눈 건강에 효과가 있다. 도수가 없으면 5만원이면 충분하다. 눈 건강을 위한 투자 치고는 정말 가성비가 좋다.